서적 – 불타는 트린식과 숲 속의 야생 소녀

최근 번역을 하던 중에 재미있는 내용을 발견하여, 블로그를 방문하시는 분들과 이 이야기를 공유해보고자 글을 올립니다. 트린식에 관련된 서적 중에 [불타는 트린식]이라는 서적이 있습니다. 이 서적은 리치 주오나 침공 당시 사망한 트린식의 팔라딘 조합장 제페스가 어린 시절, 트린식이 오크 침공에 의해 함락되던 모습을 그린 서적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인 [숲 속의 야생 소녀]라는 책이 하나 있는데, 이 책은 어떤 여행자가 우연히 유 근처 숲 속에서 어떤 여자에게 붙잡혔다가 풀려난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는 얼핏보면 매우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고, 실제로 많이 다르긴 하지만 공통되는 부분을 갖고 있습니다.

우선적으로 여러분께서 추리하실 수 있도록 전문을 올려보려고 합니다. 이 부분에서 일부 부분은 게임 내에서 텍스트 제한과 몇 가지 요인으로 의역된 부분이 있지만, 읽기 어렵진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봄의 아침에 트린식의 사암 장벽이 석양에 빛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아이들은 난간과 통로를 내달렸다. 웃으며 달리는 소리는 자명종처럼 아침을 알렸다. 비록 아이들의 모습은 누추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나 역시 웃으며 내달리던 아이들 중 하나였다.

어린 아이였던 우리는 그 어두운 날이 오리라곤 생각지도 못헀다. 우린 너무 어렸으니까. 어쨌든 우리는 고요한 의회에 몰래 숨어 들어갈 수 있었다. 바다를 바라보던 팔라딘 탑 안은 촛불로 밝았지만, 분위기는 어두웠다. 우린 숲 속에서 다가오는 위협에 대해 훨씬 더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트린식의 해자에 사악한 피조물들의 습격이 더 잦아지는 걸 눈치챘어야 했다. 그러나 우린 그저 어린 아이였다! 난간과 해자는 우리에겐 놀 장소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우린 이런 보호 구조물의 필요성에 대해서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도시를 가로지르는 남쪽 강에 있는 흉벽의 바라부는 쪽에 있는 과수원까지 헤엄쳐 가곤 했다.

대저택에 살던 부유한 이들은 창문을 통해 우릴 향해 주먹을 휘두르며 소리를 치곤 했다. 우리가 더러운 발로 한껏 가꿔놓은 정원을 망치며 달음질을 쳤다 물에 텀벙 빠져 아무 생각 없이 과일 나무에 물을 튀겼기 때문이다.

남쪽 강은 천천히 아래로 관문이 따로 없는 아치 아래로 흘렀고, 우리는 풀로 덮힌 둑에 누워 수련 잎이 물에 떠다니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봄날 즐거운 기억이 깃든 자리가 트린식을 침공하던 끔찍하고 사악한 괴물들의 출입구가 되었다.

나는 둑에서 놈들이 몰려 오는 광경을 보았었다. 놈들의 물에 젖어 엉겨붙은 머리와 흙먼지로 뒤덮힌 눈썹을 보았었다. 놈들이 밝은 금발에 생기넘치는 눈을 가진 변덕쟁이 소녀인 레일라를 붙잡는 광경을 보았다. 나는 한때 그녀의 손을 잡고 밀수업자의 관문의 작은 다리에서 얼음과자를 나눠먹는 꿈을 꾼 적도 있었다.

놈들이 그녀를 잡았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벽을 넘어와 그녀를 끌고 갈 때 소리조차 지르지 못했다. 투구를 쓴 오크 대장들이 대저택을 향해 돌격하라고 소리지르는 모습을 보고도 도시에 경고를 하지 못했다. 날 비난하지 말길 바란다. 나는 그저 아이였으니까.

그저 복숭아 나무에 숨어 션의 재봉점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와 엘레노어의 여관 지붕에 일던 불길을 보고 떨던 소년이었을 뿐이다. 지금까지도 레일라에 대한 소식은 듣지 못했다. 지금도 불에 타던 나무 냄새가 악몽에 나온다. 성인이 된 지금, 그때를 돌이켜보면 그 운명의 날 트린식의 방어벽에 결함이 있음을 기억해낼 수 있다.

그리고 그게 왜 우리의 성벽이 두 배나 가까이 증강된 이유이며, 우리의 건물들이 이제 칙칙한 색의 요새 도시로 지어진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 새 팔라딘 탑의 꼭대기에서 바라보면, 장벽의 섬을 가로지르는 하얗고 커다란 돛을 감시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집시가 야영하고 있는 도시 남부의 작은 빈 공간도 감시할 수 있다.

한 때 불타던 도시를 떠올리면 이제 나무가 아닌 돌로 지어져 안전하고 불굴의 요새를 자랑하는 도시의 모습에 고마움을 느낀다. 내가 살아있는 한, 이젠 트린식이 불타는 모습을 보지 않으리라. 더 이상 작은 소녀가 끌려가는 모습에 비명을 지르며 잠을 설치는 시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트린식의 팔라딘 길드장 제페스

그리고 다음의 서적은 [숲 속의 야생 소녀]입니다. 위의 내용과 잘 비교하면서 읽어보시길 권장합니다.

그녀는 말했다. 자신의 이름은 레일라라고. 그녀의 머리는 거칠게 덩굴나무와 가시나무로 땋여져 있었다. 나는 놈들이 그녀를 해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워했지만, 내가 물었을 때 그녀는 몸을 흠칫하며 한 번 더 날 흘겨보았다. 비록 내 손은 그녀의 밧줄로 단단히 묶여있었지만, 그녀의 까치둥지같은 머리를 보고 있노라니 빗질을 해주고 싶어 손이 근질거렸다.

그녀는 반짝이는 모닥불 아래에서 밤새 자신의 고향 트린식에 대해 말했다. 그녀는 오크들에게 납치되어 길러졌다고 주장했지만, 나는 믿기 어려웠다. 내가 아는 오크들은 무고한 사람들의 고기를 즐겨 먹는 괴물이었으니까. 내가 이 말을 꺼내자, 그녀는 꺌꺌대며 자신은 무고하지 않다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리곤 자신은 종종 행상인을 습격해 의식없는 자들의 소지품을 약탈한 적도 있다고 했다! 이 순간 나는 공포를 느꼈고, 그녀의 웃음 사이로 보이는 이빨이 사람보다 더 날카로운 것처럼 보였다. 오크들에 의해 길러졌다는 이야기가 뼛 속 깊숙이 공포가 스며들었다. “날 잡아먹을 거예요?” 나는 공포에 질려 떨면서 물었다.

그녀는 마치 야생 동물이 말을 이해하지 못할 때 고개를 갸우뚱하듯 날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을 보자 심연으로 빠질 것만 같이 어두웠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툴툴대며 “아니”라고 말했다. 그 목소리는 마치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아니” 그녀가 말헀다. “당신은 내가 예전에 알던 꼬마를 떠올리게 해. 내가 납치되기 전 소녀 시절에 거대한 사암벽 도시에서 놀 때 말야. 걔도 당신처럼 옅은 갈색 머리였지. 난 걔랑 손을 잡고 얼음 과자를 나눠먹던 꿈도 꿨어. 이름은 제페스였지.”

다음날 아침, 그녀는 날 보내주었다. 물론 내 주머니와 옷가지를 몽땅 가져가고 다시 붙잡히지 말라며 숲으로 도망치라고 했지만 말이다. 다시 잡히면 이번처럼 순순히 놓아주지 않을 것 같다. 난 정말 미친듯이 도망쳤고, 이윽고 유로 향하는 길로 나올 수 있었다.

얼마나 달렸던지 내 피부에 나무에 긁힌 자국이 여기저기 있었지만, 그 뒤로 그녈 보지 못했다. 종종 나는 그 제페스라는 소년이 누굴까 궁금해한다. 그리고 사암벽 도시에 살던 소녀를 기억할련지도 말이다. 내가 아는 제페스라곤 작년에 오크와의 전쟁 중에 죽은 팔라딘 조합장밖에 없다. 그도 옅은 갈색 머리를 갖고 있긴 하지만.

그렇지만 인육까지 맛본 적이 있는 야생 소녀와 나란히 있던 모습을 상상하긴 어렵다. 참 운명이란 기묘한 것이다. 어쩌면 이 팔라딘이 그 소녀의 명예를 기리며 도시를 수호하다 의도치 않게 그녀가 한 때 아버지가 불렀을 오크를 처치했을 지도 모르니까.

이 두 가지 이야기를 읽으셨다면, 머리에 스쳐지나가던 사실이 눈에 보이실 겁니다. 바로 제페스가 [불타는 트린식]에서 묘사한 어린 시절 오크에게 끌려가던 어린 소녀인 레일라가 바로 이 [숲 속의 야생 소녀]에 나오는 그 레일라라는 사실을요.

이 이야기를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레일라는 오크에게 끌려간 이후에 다행스럽게도 잡아먹히진 않았지만 한동안 오크들과 함께 무리지어 생활을 하다 도망쳐나와 강도가 되어 숲 속을 떠돌아 다니며 행상인을 습격하게 된 걸로 추정됩니다.

반면 제페스는 그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인해 성년이 된 이후에도 악몽에 시달렸고, 결국 또다른 오크 침공에서 트린식을 구하고자 헀다가 전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이러니한 점은 두 소년, 소녀 모두 같은 꿈, 즉 ‘손을 붙잡고 얼음 과자를 나눠먹던 꿈’을 꾸었다고 한 것으로 보아 서로 좋아하던 사이임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훗날 소녀는 자라서도 제페스를 기억하며 그와 닮은 옅은 갈색 머리를 가진 이 여행자를 붙잡았다가 놔주는 연민의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합니다. 이를 미루어보아, 그녀가 비록 오크에 의해 길러져 악행을 저질렀다고는 하지만 인간미를 완전히 잃진 않음을 시사하기도 합니다.

이 두 가지 이야기는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의 연계이며, 동시에 서로의 모습에서 보여주는 미덕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기도 합니다. 울티마 온라인에서 이런 서적을 모아 읽어보는 재미도 참 쏠쏠한데, 최근에는 이런 줄거리나 일화가 담긴 서적이 좀처럼 없어 아쉽긴 합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이런 소소한 이야기의 재미를 느끼는 것도 나쁘진 않은거 같습니다. 매우 오랜 시간동안 울티마 온라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놓친 이야깃거리를 찾게 되니 뭔가 색다른 기분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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