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시대 – 하나의 계곡

엘리 라프킨 교수의 일지에서 인용

천 텐트 반대편에 일렁이는 모닥불이 희미한 빛을 내고 있었다. 밀림은 아직 밤이었으며, 지저귀는 귀뚜라미와 원숭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산들바람이 불어오자 열대 식물의 잎사귀가 흔들리며 바스락거렸다. 마법 학교를 떠난 지 수 개월이 지났음에도, 에오돈의 밀림은 내겐 불안하기만 하다. 놀라운 동식물이 에오돈 계곡에 개성을 부여하며 친밀감을 느끼게 한다. 파릇파릇한 지형을 가로질러 굽이쳐 흐르는 강줄기는 계곡을 살아있게 만들며, 비옥하게 만든다. 저 멀리 끊임없이 연기를 뿜어내며 높이 솟은 대화산의 칼데라는 과거를 짐작케 한다. 에오돈의 지상은 매력적이며 따스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엔 위험과 외부의 위협이 존재한다.

운이 좋게도 나는 미르미덱스를 한 번만 마주쳤다. 키틴질의 외골격에 반사된 어슴푸레한 햇살이 내 눈을 찔렀다. 그게 뭔지 다시 보려고 하기도 전에 날 안내하던 자가 우렁찬 전투 함성을 내지르며, 도끼를 쥐어들며 내 앞을 가로막았다. 그 도끼는 바람을 가르며, 미르미덱스 전사의 숨통에 곧바로 내리꽂혔다. 도끼가 꽂힌 상처에서 녹색 피가 줄줄 흐르며, 미르미덱스는 온몸을 비틀며 고통스러워했다. 나는 도망치려 했으나, 내 호기심이 날 막았다. 그 생명체는 거대했으며, 사람의 두 배 크기였다. 곤충처럼 길게 늘어진 관절 부속물이 붙어있는 모습이었다. 머리에서 돌출된 집게발 한 쌍엔 진한 선홍색 피가 선명하게 묻어 있었다. 내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다가가자, 날 안내하던 자는 도끼로 다시 한 번 바람을 갈랐고, 이번엔 그 괴수의 목을 베었다. 생명체의 목에서 녹색 피가 흥건히 흐르며 밀림 바닥을 적셨다.

그 날 이후로는 미르미덱스를 본 적이 없다. 난 미르미덱스가 지하에 서식하는 종이라는 걸 알게 되었으며, 아주 가끔 지상에 올라와 먹잇감을 사냥한 뒤 다시 둥지로 돌아간다는 것 역시 알게 되었다. 에오돈은 매일이 놀라움의 연속이며, 발견을 기다리는 것들로 가득하다. 비록 일은 고되고 날 지치게 하긴 하지만, 그런 즐거움과 잠에 골아떨어지게 하는 이점을 생각하면 오히려 환영이다. 밀림이 고요해지며 내가 잠을 청해야겠다고 생각한 때였다. 잠시 뒤 으스스한 비명이 밀림에 울려퍼졌다…


일꾼

저자: EM 말라키

4개월 전

마치 곤충이 나무에서 수분을 보충하려는 듯이 거대한 부리가 정신없이 나무 내피에 구멍을 내고 있었다. 일꾼은 둥지를 위해 초목을 모으는데 특히 공을 들였다. 그리고 그 날은 유난히 더웠다. 몇 시간은 더 일을 하고 난 뒤에야 돌아가 안전히 쉴 수 있을 터였다. 여왕께선 일꾼이 둥지로 가져온 결과물에 흡족해하시리라.

일꾼이 끈적한 수액을 즐기고 있을 때, 땅이 흔들리기 시작하며 수상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불어오는 바람 사이에서 풍기는 냄새가 더듬이에 느껴지며 미르미덱스에서 미르미덱스로, 세대 간 전승되는 기억을 자극했다. 그 냄새는 시큼했고, 동식물에게선 나지 않는 모르는 냄새가 섞여 있었다. 일꾼은 전승된 기억을 더듬다 잠시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나 곧 그 냄새의 근원을 향해 걸어갔다. 여왕에게 정보를 수집해 가거나, 아니면 적어도 죽더라도 자신의 죽음으로 군체에게 경고를 보낼 수 있을 터였다. 어느 쪽이 되었건 간에 일꾼의 행동은 숭고하게 여겨질 것이리라.

일꾼은 숲 깊숙이 들어갔다. 무성한 수풀을 지나자, 악취가 점점 더 강해졌다. 일꾼의 몸에 나 있는 털이 공기 중에 에너지가 흐르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쓰러진 나무와 함께 생겨난 공터쪽으로 이동하자, 그 냄새의 근원을 볼 수 있었다. 그건 마법이었다. 그리고 두려움에 걸맞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은빛 차원문의 소용돌이 치며 수 많은 눈들이 투영되고 있었다.

한때 미르미덱스를 조종하며 괴롭히던 압제자들이 이런 마법을 사용했었다. 셀 수도 없는 수 많은 군체가 압제자들을 이 세상에서 없애기 위해, 그리고 그들의 마법을 봉인하기 위해 죽었다. 이제 남아있는 것이라곤 산산조각나 흩어진 폐허들과 압제자들의 애완동물인 자신들이었다. 일꾼이 바라보고 있는 사이, 차원문을 통해 어떤 생명체들이 나왔다. 반짝이는 기이한 금속성 갑각을 가진 채, 마치 작은 미르미덱스 둥지에 있는 수호자들처럼 행동했다.

그 생명체 중 하나가 일꾼을 가르키며 고함을 치기 시작하자, 일꾼은 서둘러 이 자리에서 후퇴하고 보고 들은 모든 걸 여왕에게 보고해야 할 때라는 걸 직감했다.


무리

저자: EM 말라키

굶어죽기 직전인 알로사우르스는 평소처럼 다니던 사냥길을 떠나 마른 사막까지 방황했다. 방황하던 중에 그 지역을 차지하던 미르미덱스를 마주쳤을 때, 알로사우르스는 그 곤충을 쉬운 먹잇감이라고 판단하고 돌진했다. 일꾼들이 흩어지며 공룡을 둥지로 유인했다. 모래 구덩이에서 미르미덱스 전사가 사방팔방에서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곤 커다란 야수를 공격함과 동시에 퇴로를 차단했다. 알로사우르스의 강력한 턱이 몇 마리의 사지를 뜯어내는 동안, 미르미덱스는 부상당한 자들을 즉시 다른 개체로 교체하는 전술을 썼다. 거대한 파충류를 향해 무자비한 곤충 무리의 파도가 쏟아져 흘렀다. 그리고 공룡이 내지른 최후의 비명은 끔찍했다.

곤충 전사가 쓰러진 공룡에게서 물러나자, 작은 일꾼들이 돌아와 시체를 분해하기 시작했다. 기이할 정도로 질서정연하게 살을 해체하고 뼈를 부순 뒤에 지하 구덩이로 가져갔다. 일이 마무리되자, 사막엔 모래밖에 남지 않았다. 조프리는 먼 언덕에서 그 광경을 보며 에오돈 계곡의 위험성을 알아보았다.

그가 에오돈에 있는 브리타니아인들을 감독하라는 어명을 받들어 왔을 때, 그는 에오돈과 브리타니아 양측이 보여주는 최악의 인간성이라는 경계에 서 있었다. 적대적인 에오돈의 부족이 탐험가를 공격하고 있지 않은 때에는 소사리아의 덫 사냥꾼들과 강도들이 에오돈 부족을 약탈했다. 그가 본 끔찍한 범죄 중 하나는 쿠라키 부족을 마치 운동 경기마냥 죽이고 다니는 것이었다. 미낙스와 그녀의 하수인들이 그림자요새에 틀어박혀 농성하고 있는 동안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걸 보아왔다.

미낙스를 제외하면 가장 위협적인 건 바로 미르미덱스 무리였다. 최초 보고에 따르면 이들은 그저 거대하고 흉폭한 곤충이라고만 여겼었다. 그러나 이제 미르미덱스는 조직적이고, 지능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일꾼 무리는 매일마다 먹이를 둥지로 가져가 새로운 전사들에게 영양분을 공급했다. 그리고 이젠 매일마다 미르미덱스가 인간 거주지와 야영지를 습격하는 실정이었다. 대부분의 에오돈 원주민 부족들은 벌써 후퇴하여 자신들만의 거주지를 요새화하였다.

유일한 예외는 바르랍 부족이었다. 바르랍 부족은 미르미덱스를 추앙했었으며, 존경의 표시로 버려진 미르미덱스 갑각을 입으며 죽은 자들을 곤충의 양분으로 바쳤다. 이들은 지금처럼 미르미덱스 무리가 에오돈을 덮치고 있는 모습을 정화의 때가 왔노라며 어떤 징조로 여겼다. 이들은 조프리의 정찰병이 미르미덱스 굴 근처로 절대로 가지 못하도록 막았다. 조프리 역시 미르미덱스 굴로 무리하게 진입하다가 바르랍 부족에게 배후를 잡힐 수도 있기에 군대를 움직일 수도 없었다.

어떤 해결책을 빨리 찾아야만 했다. 그렇지 않다면 미르미덱스 무리가 에오돈을 휩쓸 터였다.

조프리는 자신의 왕이 적임자를 찾아주길 간절히 바랬다. 조프리가 그런 간절한 바람과 함께 돌아서서 자리를 떠나려고 할 때, 한 일꾼이 자신을 바라보는 걸 깨닫곤 욕이 튀어나왔다.

댓글 달기